붉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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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과 수필산책





붉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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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산


6.25가 일어난지 72해 째입니다.
문득 김동인의 단편소설  '붉은 산'이 떠오릅니다.
내가 어릴 때 보던 고향산들은 모두 붉은 산이었습니다.


1930년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소작인들 마을의 송첨지가  만주 지주에게 소출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아 죽자, 조선인 마을사람들은 흥분만 할뿐, 누구 한사람 나서서 항의 한마디 못했습니다. 투전과 싸움질, 색시질에  망나니로  마을의 골치거리인 '익호'를 마을 사람들은 '삵'이라 불렀는데,  그때 '삵'이 만주 지주를 찾아가 항의하다가 도리어 얻어 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다음날 아침 동구밖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삵'은 마을에 온 의사선생의 손을 잡고 숨을 거두며 "ᆢ선생님, 보고 싶어요, 붉은 산이ᆢ그리고 흰 옷이!"라는 말로써 생을 마칩니다.
'붉은 산'과 '흰 옷'은 우리나라 땅과 동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삵'이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그 붉은 산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1950~1960대 이전 우리나라 모든 산은 붉은 민둥산이었습니다. 그 붉은 산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삵'에게  잊을 수 없는  고국의 고향산 모습이었나 봅니다.


일제시대  나무란 나무를 모두 잘라 땔감에 쓴탓으로 그때부터 우리나라 산은 민둥산이 되었고, 6.25 때 쏟아진  포탄으로 남은 산도 모두 붉은 민둥산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본 고향의 산은 나무 한그루없는 붉은 민둥산이 산맥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붉은 황토로된  고향마을앞 야산과 마을 뒤의 붉은 돌모래산이  마을 주변을 이루었습니다.
황토로된 붉은 땅은 옛부더 매우 귀한 땅이라  다루어졌는데, 우리 조상들은  붉은 황토로 된 야산이 있는 곳을 좋아하여 마을로 자리 잡았던 모양입니다.


어릴 때 덜익은 감을 붉은 야산 돌구석에 숨겨놓았다가 며칠후 갔더니 들짐승들이 먼저 가져가 버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대학후배 이oo 대법관은 붉은 황토흙을 볼때마다 가슴이 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가 붉은 황토흙을 보면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낍니다.
황토는 귀한 흙이고, 흙은 우리의 한부분이며 우리에게는 영원한 조상이고 형제들이며 삶의 동반자입니다.


어릴 때  나무 한그루 없던 붉은 산, 이제 나라의 모든 산은 산림사업의 성공으로 어디가나 나무로 울창하게 덮혀 있습니다.

붉은 산,
6.25때는 마을 어른들이  그 붉은 산으로 들어가 움막을치고 일시 몸을 숨기기도 했습니다.

인디언 시애틀 추장은, 이땅의 모든 흙은 그저 흙이 아니라 신성한 것이고 거룩한 것이며 어머니의 대지라 했습니다.


붉은 산, 우리의 땅, 영원한 어머니의 땅.
오늘 6.25를 맞이하여 옛날 그 붉은 산을 다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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