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천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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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천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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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 기행/천년의 시간/

 

내가 경주 계림을 처음 찾은 것은 T시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한 후 2학년이 되던 해의 가을수학여행때이었다. 그 당시 수학여행은 경주의 유적지를 답사한 후 배를 타고 남해를 거쳐 한려수도를 보고 충무를 다녀 오는 34일 코스이었다.

그 시절에는 중학생쯤되면 요즈음과는 달리 제법 어른 대접도 받았는데, 우리 학생들은 이때 생전 처음 집을 떠나 여행길에 나서게 되었다. 우리들은 T시의 역전에 집합한 후 담임 선생님의 인솔하에 완행열차에 올라탔다. 열차는 느리게 출발하여 들판을 지나 경주로 향해 갔다. 열차 안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어서 매우 왁자지껄하며 시끄러웠다. 고장난 유리 창문안으로 이따금 가을비가 새어 들어 왔으나 이를 탓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열차가 경주 부근에 이르자 차창 너머 저 멀리에 구릉같이 큰 무덤들이 여기 저기 있는 것이 보였다. 한눈에 왕릉이거나 높은 신분을 가진 자의 능임을 알 수가 있었다. 우리들은 경주역에 내린 후 가을비를 맞으면서 경주 박물관부터 관람했다. 박물관들은 어디를 가나 선사시대의 유물로부터 조선말엽의 유물들을 엇비슷하게 비치해 두었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 다만, 나는 그곳에서 경주 유적지를 설명해 둔 흑백 사진첩 1매를 샀던 일만 기억난다. 그 다음은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갔다. 안내원은 원래 석굴암 부처님의 이마에 금강석이 박혀 있어서 한줄기 빛이 나오고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를 발견한 일본인이 훔쳐 갔다고 설명해 주었다. 다음날 우리들은 황룡사, 분황사지, 안압지, 첨성대를 답사한 후 계림으로 갔다. 계림은 경주시 교동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의 숲에 자리잡고 있는 사적 19호이다. 그 당시 계림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 길이어서 흙은 가을비에 축축히 젖어 있었고, 계림은 운무에 자욱이 덮여 있었다. 안내원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반월성 서쪽 마을의 밤길을 호공(瓠公)이 걸어 가고 있었다. 그 마을곁에는 계림이란 숲이 우거져 있었다. 길을 가던 호공은 그 숲속이 온통 환한 광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그 숲속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 구름 속에는 황금으로된 궤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숲 속을 밝히는 그 광명은 바로 그 황금 궤에서 번져 나오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선 흰 닭 한마리가 높이 울고 있었다. 호공은 궁궐로 달려가 이 광경을 탈해왕에게 아뢰었다. 탈해왕이 즉시 계림으로 거동하여 궤를 열어보았더니 한 사내아이가 있어 알지라 이름 하였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이라 하였다. 알지를 안고서 탈해왕이 궁궐로 돌아오는 길에는 새와 짐승들이 따라오면서 날고 뛰고 모두 기뻐서 야단들이었다. 알지의 탄강, 그것은 후한(後漢) 명제(明帝) 38월 초나흗날 밤의 일이었다.”

계림이라는 명칭은 닭이 울었다는 데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신라의 신성한 숲이라 하여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고, 100여주의 고목이 있다.

나는 그 때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한 마리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 나는 경주 계림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그 사이에 30여 년의 시간들은 훌쩍 지나갔다. 나는 T시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나왔으며 결혼도 하고 딸과 아들을 두었다. 딸과 아들은 세계화를 좋아하고 여행도 외국으로 가기를 원한다. 나는 그동안 그저 그렇게 아이들 위주로 생활해 왔다. 그 때 우리 학생들을 인솔한 담임 선생님은 여러 학교의 교장선생님을 역임하시다가 오래 전에 정년 퇴직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번도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영롱한 눈빛을 갖고 있던 그 때의 친구들은 그 후 사회의 각계각층에 나가 현재 대체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고, 그 중에는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친구도 꽤 있다. 수학여행길에서 나의 옆자리에 있던 C군은 나와는 다른 고등학교를 진학했는데 지금은 서울 강남에서 참치 집을 경영하고 있고, 동문회 산악회장을 하기도 하여 등산을 갈 때면 만나서 옛정을 나누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나는 가족들과 함께 12일 계획으로 경주를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승용차를 이용하고 고속도로를 달려 경주를 찾았다. 경주톨게이트를 거쳐 보문단지를 들어 가는데 예전에 보았던 그 왕릉들은 여전히 평화스럽게 누워있었다. 나는 경주 코오롱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내 소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마음 설레다가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아침, 가을 하늘은 더 없이 높고 구름 한점 없었다. 경주는 잠에서 깨어나 천년의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다소 마음이 들뜬 채 승용차를 몰고 먼저 경주 박물관으로 달렸다. 아이들은 내 마음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경주 박물관을 비롯하여 불국사, 석굴암을 들렀다. 석굴암은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유리로 입구를 밀폐한 후 관람시키고 있었다. 황룡사, 분향사지를 거쳐 안압지, 첨성대, 천마총을 답사한 후 해질 무렵 계림에 도착했다. 길은 예전과 달리 모두 깨끗하게 포장이 되어 있었고, 주변 환경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목들로 우거진 계림은 천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내 소년 시절이 지난 뒤에도 내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 다가 왔다. 나는 그 앞에서 말을 잊고 그냥 서있었다. 가을 바람 소리와 함께 낙엽이 한두 잎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딸과 아들은 별다른 관심도 없어 되돌아 가자고 재촉했다. 관리소 직원은 관람시간이 끝나서 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곳에서 내 소년시절의 모습을 보았고, 천년의 시간을 건너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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